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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와 니체가 말하는 선과 악, 옳고 그름, 그리고 그들의 도덕관

옳고 그름

니체의 도덕관

나는 선함이라는 것이 진실로 선한 것인지 아닌지 아직 모른다. 만약 그것을 선함이라고 한다면 내 몸을 살릴 수가 없고, 선함이 아니라고 하면 내 몸을 살린다

오자서는 왕에게 간언 했다가 왕이 그 말을 듣지 않자 다퉜고 끝내 자신의 육신을 망쳤다. 하지만 만약 왕과 다투지 않았다면 그는 명성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진실로 선함이란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가

서양의 현대철학은 니체에서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면면하게 계승되어 온 로고스 중심주의적 전통 이데아 중심적 사유가 니체로 인해 해체되고 전복됐다

서양의 철학사는 니체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다. 니체는 서양의 철학 전통에 나타나는 선과 악의 가치평가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려 했다

니체에 의하면 모든 도덕 감정은 인간의 동물적 생리적 충동의 영역 속에 포함될 수 있다. 니체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기존의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평가 구도를 좋고 나쁨으로 전환하려 했다

이러한 관점은 스피노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선함이란 좋음을 악함이란 나쁨을 의미했다. 선과 악에는 주체가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어떤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절대 규범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에 의하면 선함이란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이다. 또 악함이란 우리가 선한 어떤 것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선과 악이란 능력의 증대 감소와 관련이 있다. 또한 스피노자와 니체에 따르면 선과 악은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우리의 존재를 보존하거나 향상하도록 한다면 선함이고 존재를 위축시킨다면 악함이다. 니체는 도덕을 힘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했다

힘이 충만하여 향상되는 것을 느끼면 그것이 곧 선함이고 좋음이다. 또 힘이 빠져나가 퇴보하는 것을 느끼면 그것이 곧 악함이고 나쁨이다

악함과 나쁨이란 일종의 소화불량 같은 것으로서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만나는 것이다. 다른 상황에서 만났다거나 내가 훨씬 강한 소화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악함과 나쁨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겠으나, 현재로서는 해로운 존재가 된 것이 바로 악함과 나쁨이다

다음은 스피노자의 말이지만 니체의 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선함이란 내가 꼭 지켜야만 하는 규범이 아니라 나에게 맞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그것을 선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노력하고 의지하며 충동을 느끼고 욕구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장자의 도덕관

장자의 도덕에 관한 관점은 어땠을까? 장자는 선과 악의 상대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장자의 아포리즘에 의하면 만약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선함만을 쫓아 포악한 군주에 온몸으로 항거하면 내 몸이 다칠 수도 있다

장자는 기존의 선함이라는 가치에 의문 부호를 던졌다. 장자가 볼 때 도덕적 규범이란 생의 의지를 북돋아 주는 방향으로 기능해야만 한다

오자서는 오나라 왕 부차를 도와 월나라 왕 구천과 벌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구천이 많은 재물을 바치며 강화를 요청하자 부차는 그것을 수용한다

오자서는 이참에 월나라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간언 했으나 부차는 듣지 않는다. 왕은 오자서를 점점 멀리한다. 오자서는 화가 닥칠 것을 염려해 자기 아들을 제나라에 맡기는데 부차는 이 사실을 알고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령한다

오나라 사람들은 오자서의 충절을 기려 사당을 지어준다. 우리는 오자서의 충절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만약 오자서가 자신의 간언을 부차가 듣지 않은 것을 더는 마음에 두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유유자적해 있었다면 부차로부터 해악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출철 있는 인물로 세상에 이름이 회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서 중시하는 도덕적인 옳음을 지키고자 하면 오자서와 같이 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면 세상으로부터 부도덕한 자로 낙인찍힌다. 이렇듯 도덕적인 옳음이 나의 양생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우리의 선택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장자가 볼 때 옳고 그름이란 상황과 때에 따라 다르게 규정된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선양의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적으로 칭송받는다

또한 그들은 나라를 평화롭게 잘 유지했다. 선양이란 왕의 자기 자식 대신 나라 안에서 덕이 있는 훌륭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연나라 왕 쾌는 재상인 자지에게 선양을 하였지만 나라는 3년 만에 혼란에 빠지고 그 틈을 타 제나라의 침략으로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

똑같이 선양해도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선양이 아닌 무력에 의해 나라를 찬탈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전쟁으로 왕이 되어 나라를 잘 유지하였으나 초나라의 백공은 전쟁으로 멸망한다

장자에 의하면 옳음과 좋음이란 변치 않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주사위 놀음 같은 복불복에 가깝다. 그러니 때로는 도덕적 가치판단 같은 인위적인 억압을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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